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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현에 가다(1441년 3월 17일)
세종이 소헌왕후와 함께 온수현으로 출발했다. 온수현은 지금의 충청남도 온양이다. 온양은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 시대에도 온천으로 유명했다. 3월 20일 온수현에 도착하여 5월 2일 온수현을 출발할 때까지, 세종은 약 40일간 온천 요양을 했다.
세종이 온천에서 요양한 이유는 눈병 치료를 위해서였다. 그때 세종은 “눈병을 얻은 지 10년이나 되어 마음 편히 휴식하고자”(<세종실록> 92권, 세종 23년 2월 20일) 했다. 치료 목적의 온천 요양은 태조 때부터 있던 일이었다. 세종도 이때 처음 온천 요양한 것이 아니었다. 8년 전인 세종15년(1433년)에 풍증 치료를 위해 온수현에 다녀온 바 있었다.
그런데 세종23년부터 세종의 치료 목적 요양이 빈번해졌다. 온천뿐만 아니라 냉천에서도 요양했는데,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세종24년(1442년) 3월~4월, 1개월간 강원도 이천(온천)
세종25년(1443년) 3월~4월, 1개월간 충청도 온수현(온천)
세종26년(1444년) 3월~5월, 2개월간 충청도 청주 초수리(냉천)
세종26년(1444년) 7월~9월, 2개월간 충청도 청주 초수리(냉천)
요양이 잦았다는 것은 질병이 심해졌음을 의미한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했다. 어떤 질병을 앓았을까? 세종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젊어서부터 한쪽 다리가 아파서 10여 년을 고생하다 조금 나았지만, 등의 부종으로 고생한 지 오래되었다. 아플 때면 마음대로 돌아눕지도 못하고 그 고통을 참을 수가 없다. 지난 계축년(1433년) 봄에 온천 목욕을 하려 하였으나, 대간(臺諫)에서 백성에게 폐가 미친다고 말하고, 대신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두세 사람이 권하여 온천에서 목욕하였더니 과연 효험이 있었다. 그 뒤에 간혹 다시 발병할 때가 있으나, 그 아픔은 전보다 덜하다. 또 소갈증이 있어 열 서너 해가 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나았다. 지난해 여름에는 임질을 앓아 오랫동안 정사를 보지 못하다가 가을 겨울에 이르러 조금 나았다. 지난봄 강무를 한 뒤에는 왼쪽 눈이 아파 안막을 가리고 오른쪽 눈도 어두워서, 한 걸음만 떨어져 있으면 누구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겠다.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니 내 몸이 늙어서 쇠약해졌다.
(<세종실록> 85권, 세종 21년 6월 21일)
이 말을 했을 때 세종의 나이 42살이었다. 가장 활발하게 일해야 할 나이에 세종은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다리 통증, 등 부종, 소갈증(당뇨), 임질(전립선염), 눈병 등등. 현대 의학으로는 관리 가능한 질병이지만, 세종 시대의 의학으로는 관리가 쉽지 않은 질병들이었다.
질병을 다스리기 위해 약물치료와 식이요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큰 차도가 없자 온천과 냉천 요양에 나서게 되었다. 그런데 임금이 요양에 나서면 백성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세종은 요양을 미루었는데, 세종23년(1441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그때 세종의 나이 44살이었다.
세종은 온천 발굴과 개발을 독촉했고, 세종23년에서 26년까지 4년 사이에 5차례 온천과 냉천에서 요양했다. 건강 상태가 더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종26년(1444년) 9월 청주 초수리에서 요양한 이후 온천이든 냉천이든 요양을 중단했다. 효험도 확실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온천 요양이 다시 거론된 것은 세종31년(1449년)이었다. 그해 12월 6일, 세종은 “최근 왼쪽 다리마저 아파서 일어날 때 반드시 부축을 받아야 하고,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있어도 놀라고 두려워서 마음이 몹시 두근거리노라.”(<세종실록> 126권, 세종 31년 12월 3일)라며, 온천에서 목욕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신하들은 황해도 배천 온천을 추천하자, 세종은 지승문원사 강맹경에게 배천 온천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강맹경이 조사 후, 1천 명을 동원하여 가옥 40채를 짓고 녹각성을 설치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세종은 반대했다.
내가 온천에 가려는 이유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다고 해서 병에 차도가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가고자 한다고 크게 행궁을 지으려 하니, 황해도 백성들이 굶주리고 질병을 앓고 있는데, 어찌 내가 이 같은 피해를 주면서 가겠는가. 욕실과 거처할 집은 그전 것을 그대로 수리하여 사용하고, 녹각성도 설치할 필요가 없다.
(<세종실록> 126권, 세종 31년 12월 11일)
어쩔 수 없이 온천에 가지만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세종은 바닷길로 가는 게 가능한지를 물었다. 황해도 배천은 바닷가 고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승지 이사철이 불가하다며 한 마디로 잘랐다. 그래서 배천 온천 요양은 흐지부지되었다.
세종이 세상을 떠나기 2달 전이었다. 건강을 회복해보려는 마지막 노력이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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