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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이 만든 신라의 석탑 감은사는 경주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금의 주소로는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용당리 55-1번지에 감은사가 있었다. 지금은 경주시로 편입된 지역이지만, 감은사가 지어질 당시에는 그저 ‘동해 바닷가’였을 뿐이다. 지금도 경주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가량 가야 하니 당시에는 하루 종일 걸어야 갈 수 있는 지역에 감은사가 있었다. 그토록 먼 동해 바닷가에 감은사를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 가에 감은사를 지었다”라고, 고려시대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밝혔다. 감은사에서 전해지던 기록에 따르면,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짓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뒤 아들 신문왕이 계승하여 재위 2년(682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기쁜 비를 만난 정자’ 망원정은 한강 변에 있으나 한강에서 접근하기 어렵다. 망원정과 한강 사이 고속화 도로인 강변북로가 놓여 있다. 지금의 망원정은 1989년에 복원되었다. 복원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강변북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망원정의 정면 출입구인 외삼문이 강변북로 쪽으로 나 있어 복원 당시 주변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이제 외삼문으로는 출입할 수 없고, 망원정의 측면 출입구인 협문으로만 드나들 수 있다. 망원정의 본래 이름은 희우정이다. 정자 안쪽에는 ‘喜雨亭(희우정)’ 현판이 달려 있고, 바깥쪽에는 ‘望遠亭(망원정)’ 현판이 달려 있다. 정자의 이름이 바뀌었으면 이전 이름은 잊히기 마련인데, 이전 이름에 얽힌 일화 역시 유명하여 두 개의 현판을 단 듯하다. 정자 이름을 왜 희우정이라고 했을까?..

광종은 어떤 임금일까? 태조 왕건은 29명의 부인을 두었다. 부인이 많았던 이유는 혼인을 세력 확장의 방편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태조와 혼인 관계를 맺은 집안은 모두 지역의 유력한 호족이었다. 광종은 충주 지역의 호족 유긍달의 딸이자, 태조의 셋째 부인인 신명순성황후의 둘째 아들이다. 태조 왕건이 세상을 떠나자, 호족들은 자신의 자손을 임금 자리에 앉히려는 싸움을 시작했다. 태조의 뒤를 이어 둘째 부인 장화왕후의 아들 무(武)가 즉위했으니, 고려 제2대 임금 혜종이다. 혜종이 즉위하자, 신명순성황후의 두 아들 요(堯)와 소(昭)가 평양의 군벌 왕식렴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켰다. 혜종은 실권을 잃고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즉위한 지 2년 만이었다. 혜종의 뒤를 신명순성황후의 첫째 아들 요가 즉위했으..

조선 중기의 실학자 유형원(1622년~ 1673년)은 에서 ‘관촉사(灌燭寺)’를 이렇게 소개했다. 반야산에 있다. 돌미륵이 있는데 높이가 54자이다. 세상에 전해지기를 “고려 광종 때에 반야산 기슭에서 큰 돌이 솟아 나와 승려 혜명이 조탁해서 불상을 만들었다.”라고 한다. ‘관촉사’는 중국의 승려 지안이 “마치 촛불을 보는 것처럼 미륵이 빛난다.”라고 말한 이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관촉의 촉(燭)은 촛불이지만, 관(灌)은 ‘물 붓다’는 뜻이니 이름의 유래와 맞지 않는다. 에서는 관촉사가 아니라 ‘관족사(灌足寺)’라고 했다. 발에 물을 부어주는 절이란 뜻이니, 한자의 의미만 놓고 보면 더 적절한 이름인 듯하다. 반야산은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에 있는 산이다. 관촉사에는 ‘돌미륵’이 있다. 돌미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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