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덕(1489~1546)은 조선 중기의 철학자이다. 송도(지금의 개성)의 화담이란 곳에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화담 선생’이라고 불렀다. 서경덕은 집안의 기대와 달리 벼슬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 연구만을 했다. 서경덕은 어렸을 적에 과거시험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포기했다. 과거시험을 안 본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간곡히 부탁하여 과거시험을 보아 사마시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과를 보기 위해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그만두고 나와 버렸다. 벼슬을 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실력자였던 조광조나 김안국이 여러 차례 서경덕을 추천했다. 그러나 서경덕은 모두 거절했다. 56살 때에는 중종이 후릉참봉이란 벼슬을 내렸다. 후릉참봉이란 조선 제2대 임금 정종과 왕비 정안왕후의 무덤을 관리하는..
묵자(BC 468경~BC 376경)는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묵적이다. 묵자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송나라 출신이라고도 하고 노나라 출신이라고도 한다. 대체로 공자의 고향 인근에서 태어났다고 추정되고 있다. 묵자의 집안은 무사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묵자를 따랐던 제자들 중에도 무사 집안 출신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묵자는 주나라 관리였던 사각의 후손에게 글을 배웠다고 한다. 묵자는 공자의 사상 또한 배웠다. 묵자와 공자 사이에는 시간적 차이가 크지 않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쯤 지났을 때 묵자가 태어났다. 그런데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은 사뭇 달랐다. 공자가 활동했던 시대를 춘추시대라 하고, 묵자가 활동했던 시대를 전국시대라고 한다. 즉, 공자는 춘추시대 ..
관중(?~B.C.645)은 중국 춘추시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다. 이름은 '이오'이고 '중‘은 자이다. 오늘날의 중국 안휘성 서부의 영수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젊었을 때부터 포숙과 사귀었다고 한다. ‘관포지교‘라는 말이 있다. 아주 친한 친구 사이의 사귐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관중과 포숙의 우정에 빗대어서 나온 것이다. 관중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가난하게 살았을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한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니체(1844~1900)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니체는 유럽 철학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철학자로 꼽힌다. 어찌 보면 그는 기왕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고자 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 인간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다.”라고 했다. 자신의 한 저서에는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즉, 자신은 다이너마이트와 망치로 파괴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니체가 파괴를 결심한 것은 고전문헌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니체는 독일의 한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모두 목사였다. 그래서 집안에서는 당연히 니체가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니체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안의 기대와 달리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특별히 고대 그리스의 문학에 관심..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어린 시절, 루소의 삶은 불우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루소를 낳은 지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10살 때에 아버지가 칼부림 사건으로 도피하자 외숙부 집에서 지내야 했다. 16살 때에는 집을 나와 홀로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를 떠돌며 생활했다. 루소가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것은 30살 때였다. 그렇다고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악보 필경사, 인쇄소 필경사 등의 일을 하며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놓지 않았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오로지 독학으로 철학, 문학, 예술을 공부했다. 38살 때에 루소는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그해에 을 써서 디종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는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철학자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고, 파리대학을 졸업했다. 레비스트로스의 특별한 이력 중 하나는 28살 때인 1935년부터 4년간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 인들에게 브라질은 매우 낯선 곳이었다. 브라질의 대학교에서 강의하려는 교수가 없어서 봉급을 세 배나 주어야 교수를 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로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봉급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브라질로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인류학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레비스트로스는 본래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5년간 철학을 공부했지만 얻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철학은 주로 언어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철학..
“당신이 말하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 없어졌습니다. 오직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군자는 때를 만나면 벼슬을 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나부끼는 풀잎처럼 떠돌아다닙니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숨겨둡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군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군자는 훌륭한 덕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당신의 교만과 욕망, 위선적인 모습과 야심을 버리십시오. 그러한 것들은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만과 욕망, 위선적 모습과 야심을 버리라고 충고를 하고 있다. 누구에게 하는 충고인가? 뜻밖에도 공자에게 하는 충고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에게 충고하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노자이다. 사마천은 에서..
장자(기원전 369년경~기원전 286년경)는 중국 전국시대의 ‘은자’이자 철학자였다. 전국시대는 문자 그대로 전쟁의 시대였다. 7개의 나라가 쟁패를 겨루다보니 1년 365일 전쟁이 없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이 시대에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조용히 숨어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을 가리켜 은자라고 했다. 《논어》에는 공자가 전국에 유세를 하며 다니는 동안 만난 은자들의 이야기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은자들은 공자가 “되지 않을 일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공자는 은자들을 가리켜 “현세를 피하여 숨어사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장자는 공자보다 100년 정도 뒷사람이다. 공자의 시대보다 전쟁의 규모가 더 커지고 광폭해진 전국시대에는 은자가 더 많아졌다. 장자 또한 은자였다. 장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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