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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1712~1778)는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어린 시절, 루소의 삶은 불우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루소를 낳은 지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10살 때에 아버지가 칼부림 사건으로 도피하자 외숙부 집에서 지내야 했다. 16살 때에는 집을 나와 홀로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를 떠돌며 생활했다.
루소가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것은 30살 때였다. 그렇다고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악보 필경사, 인쇄소 필경사 등의 일을 하며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놓지 않았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오로지 독학으로 철학, 문학, 예술을 공부했다.
38살 때에 루소는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그해에 <학문 및 예술에 관한 논술>을 써서 디종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루소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5년 뒤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발표하자, 루소는 철학에서 중심적 인물이 되었다.
루소는 그 글을 볼테르에게 보냈다. 볼테르는 당시 유럽 전역에서 유명인사였다. 볼테르는 감사의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답장에 담긴 내용은 <인간불평등기원론>에 대한 조롱이었다. 볼테르는 이렇게 썼다.
“우리를 모두 바보로 만들려는 시도를 재치 있게 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독자들은 당신의 책을 읽고 네 발로 기어 다니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적어도 60년 동안이나 그런 습관을 잊고 있던 나로서는, 다시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볼테르가 이렇듯 신랄하게 조롱한 이유는 루소가 ‘자연 상태’를 전제했기 때문이었다.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 이행함으로써 불평등이 생겨났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볼테르는 루소가 말한 자연 상태가 미개 상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루소가 인류의 진보를 부정한다고 보아 비판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루소는 실제로 존재했던 어떤 상태를 염두에 두고 자연 상태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가정이었다. 인간의 불평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밝히기 위해 하나의 가상 상태를 그려보았던 것이다. 누구나 평등하고 평화로웠던 상태를.
루소만이 자연 상태를 가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영국에서는 정치사상가 홉스와 로크가 자연 상태를 가정하고, 그 자연 상태에서 개인들이 계약을 맺어 사회(국가)가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사회계약설이라고 하는데, 루소 역시 사회계약설을 주장했다.
그런데 루소의 주장은 홉스의 주장과 상반된다.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어난다고 했다. 반면,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차이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상반된 생각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홉스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성악설을 토대로 한 반면, 루소는 인간의 본성이 원래 착하다는 성선설을 토대로 했다.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삶이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51살 때 쓴 두 권의 저서, <사회계약론>과 <에밀>이 문제가 되었다. 두 저서로 인해 루소는 정치적 탄압을 받아 은둔과 도피의 생활을 해야 했다.
루소가 살았던 시대는 ‘짐이 곧 국가’라는 구호로 상징되던 절대왕정 시대였다. 국민 전체의 5%도 안 되는 지배층이 각종 특권을 독점하면서 온갖 낭비와 부패를 일삼았다. 이 때문에 국가 재정은 파탄 났고 국민에 대한 세금 착취가 심했다.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시민계급과 농민들은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한 채 오직 특권계급의 사치와 낭비의 비용을 부담하는 신세였다.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농민의 처지가 가장 비참했다. 국가와 영주, 그리고 교회에 여러 종류의 세금을 내야 했고, 영주를 위해 각종 부역을 해야 했다. 심지어 여름밤이면 영주의 편안한 수면을 위해 밤새도록 개구리를 쫓아야만 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숲 속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강도의 폭력 때문에 지갑을 빼앗길 상황에서 지갑을 감출 수 있음에도 양심적으로 지갑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강도의 권총은 하나의 힘이다. 힘이 권리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왕정을 숲 속에서 만난 강도에 비유했다. 강도는 총을 가지고 있지만, 권총을 가졌다고 강도의 명령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절대왕정의 권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어떤 권력이 정당한가? 루소는 ‘일반의지’를 실현하는 국가가 정당한 권력이라고 했다.
‘일반의지’는 루소 사상의 핵심 개념으로 ‘국민의 뜻’을 의미한다. 따라서 루소가 일반의지라는 개념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국민주권이었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국민주권은 선거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루소는 당시의 영국 정치를 평가하면서 이렇게 썼다.
“영국의 국민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영국의 국민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국회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영국의 국민은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오늘날에도 흔히 듣는 이야기이다. 선거가 끝난 뒤 방관자가 된다면 국민은 스스로 주권을 포기한 것이 된다. 국민은 언제 어디서든 참여해야 하고, 참여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민이 참여해야 국민의 뜻인 ‘일반의지’가 실현된다.
<사회계약론>의 유명한 첫 구절은 국민에 대한 촉구였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곳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다!” 국민이 자신의 처지를 각성하고, 자신이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서 나서라는 것이었다.
<사회계약론>은 압수되어 불태워졌다. 그렇다고 루소의 사상을 불태워버릴 수는 없었다. 루소의 사상은 더욱 널리 퍼졌나갔고, 루소가 세상을 떠나고 11년 뒤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이 되었다. 아울러 오늘날에도 국민의 각성을 촉구하는 명언으로 남았다.
한편, <에밀>은 루소의 교육사상을 다룬 책이었다. 책이 발표되자 교회에서 즉각 반발했다. 그로 인해 루소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이곳저곳 피난처를 옮겨 다니다 일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에밀>은 ‘에밀’이라는 어린이를 등장시켜, 유아기, 유년기, 소년기, 청소년기 등 성장 과정에 따라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를 다루었다. 루소는 “우리는 연약한 존재로 아무것도 갖지 않고 태어난다. 태어날 때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가운데 어른이 되어 필요한 것은 모두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다.”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어린이는 결코 ‘작은 어른’이 아니다. 따라서 어린이에 대해 탐구하고, 어린이에게 적합한 교육내용을 찾아야 한다.
<에밀>의 첫 구절은 교육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조물주의 손을 떠날 때에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면 모든 것이 악해진다.”고 했다. 교유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년기와 소년기 어린이에게 교육환경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런 어린이들의 교육 현장은 결코 어른들의 ‘밥 그릇’을 위한 곳일 수 없다.
(<위클리공감> 476호, 2018년 10월 29일~11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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