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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을 이두로 번역하게 하다(1432년 11월 7일)
세종이 조회를 하며 말했다.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도 법에 따라 판결한 뒤에야 죄의 경중을 알게 된다. 하물며 일반 백성이야 어찌 죄의 크고 작음을 스스로 알아서 고치겠는가. 백성들이 법을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큰 죄 조항만이라도 이두로 번역하여 배부하면 평범한 백성들도 범죄를 피할 줄 알게 되지 않겠는가.(<세종실록> 58권, 세종 14년 11월 7일)
한자로 된 법전을 이두를 이용하여 번역하라고 했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으로 신라 때부터 사용되었다.
세종의 말에 이조판서 허조가 반대했다. “간악한 백성이 법을 알면 법을 이용하여 농간할 것”(<세종실록> 58권, 세종 14년 11월 7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세종이 반박했다.
그렇다면 백성이 알지 못하고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백성이 법을 알지 못하게 하고, 죄지은 자를 벌주는 것은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술책에 가깝지 않은가. 조상들이 법을 만든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알 수 있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세종실록> 58권, 세종 14년 11월 7일)
허조의 주장을 두고 ‘조삼모사의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조삼모사란 교활한 꾀를 써서 남을 속이는 것이다. 국가가 백성들에게 조삼모사의 술책을 부려서는 안 된다. 모든 백성이 법을 알고 법에 따라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세종의 생각 속에 ‘애민(愛民)’ 의식이 담겨 있다.
세종은 법의 집행에서도 애민 의식을 강조했다. 죄지은 자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나 죄인들 또한 백성이다. 가혹한 형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예전 어진 임금들이 형벌을 쓰는 목적은 형벌을 범하는 자가 없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어찌 무식한 백성을 엄한 법에다 몰아넣을 수 있겠는가.(<세종실록> 25권, 세종 6년 8월 21일)
형벌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된다. 그 목적 이상의 형벌은 올바르지 않다. 그래서 세종은 “형을 집행할 때는 신중하라.”(<세종실록> 50권, 세종 12년 11월 21일)고 했다. 사형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백성의 목숨은 소중하므로 혹시 착오가 있을까 염려”(<세종실록> 14권, 세종 3년 12월 22일)해야 한다. 그래서 세종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대해서는 세 차례 조사하여 아뢰라고 했다. “나는 항상 생각하기를, 사람의 죄가 사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더라도, 만약에 사정에 따라 용서할 수 있다면 모두 용서하고 싶은 것이 나의 본심이다.”(<세종실록> 24권, 세종 6년 6월 4일)라는 말에서, 세종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백성이고, 그들의 생명 또한 소중하다.
감옥은 죄 있는 자를 징계하는 곳이지 사람을 죽게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감옥을 관리하는 관리가 마음을 써서 살피지 아니하여, 심한 추위와 찌는 더위에 사람을 가두어 두어 질병에 걸리게 하고, 혹은 얼고 주려서 비명에 죽게 하는 일이 없지 아니하니, 진실로 가련하고 민망한 일이다.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은 나의 지극한 뜻을 몸 받아 항상 몸소 살피며 옥내를 수리하고 쓸어서 늘 정결하게 할 것이요, 질병 있는 죄수는 약을 주어 구호하고 치료할 것이며, 옥바라지할 사람이 없는 자에게는 관에서 옷과 먹을 것을 주어 구호하게 하라. 그중에 마음을 써서 거행하지 않는 자는 서울에서는 사헌부에서, 지방에서는 감사가 엄격히 규찰하여 다스리게 하라.(<세종실록> 28권, 세종 7년 5월 1일)
세종의 지시는 매우 구체적이다. 감옥 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종이 죄인들조차 백성으로서 보살피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법전의 번역은 애민 정신이 ‘훈민(訓民)’으로 나타난 경우이다. 훈민이란 백성을 가르친다는 말이다. 왕조시대에는 백성을 가르치지 않았다. 임금을 비롯한 지배층은 백성이 무지해야 다스리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종은 훈민을 강조했다. 백성들이 배워서 알아야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다. 훈민은 백성을 신뢰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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