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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직설>을 완성하다(1429516)

 

정초는 <농사직설> ‘서문에서 책을 쓰게 된 경위를 밝혔다.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현명한 임금을 계승하여 정치에 힘을 쓰며 백성의 일에 마음을 두셨다. 오방(五方)의 풍토가 같지 않아 곡식을 심고 가꾸는 방법이 오방마다 특성이 있으니 옛글과 다 같을 수 없다 하시며, 여러 도()의 감사에게 늙은 농부들을 만나 농사법을 물어 아뢰게 하셨다. 그리고 신() 정초와 종부시 소윤 변효문에게 낱낱이 살피고 참고하게 하시었다. 정초와 변효문은 중복된 내용을 버리고 절실하게 필요한 내용만 뽑고 엮어서 책 한 권을 만들고 제목을 <농사직설>이라고 하였다.(<세종실록> 44, 세종 11516일)

 

세종이 <농사직설>의 발간을 지휘했다고 했다. 지방의 감사에게 늙은 농부와 인터뷰하게 했고, 정초와 변효문에게 책 한 권을 엮게 했다는 것이다. 늙은 농부와 인터뷰하게 한 일이 흥미롭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은 사람이라야 어떻게 농사지어야 성공하는지 안다. 세종은 노인의 능력과 경륜을 놓치지 않았다.

세종은 여러 도의 감사, 그리고 서울의 2품 이상 관리에게 <농사직설>을 나누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농사에 힘쓰고 곡식을 소중히 여기는 게 왕정(王政)의 근본이다. 내가 늘 농사에 정성을 쏟는 이유이다.

(<세종실록> 47, 세종 12214일)

 

농사가 왕정의 근본이라고 했다. 농업이 주 산업인 시대의 얘기이다. 농업은 가장 중요한 백성의 생업이다. 농사가 잘되어야 백성의 삶이 편안하고, 백성이 편안해야 나라가 든든해진다. 그래서 세종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농사는 옷과 먹는 것의 근원이니 왕이 정치에서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세종실록> 105, 세종 26년 윤725일)라고도 했다. 이런 생각을 가리켜 민본사상이라고 한다.

민본사상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농업의 장려가 중요했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지방 수령과 면담하면서, 농업 장려가 수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며 생업을 즐기게 된다면, 어찌 농사를 짓지 않는 넓은 땅이 남아 있겠느냐? 그대가 가서 갈고 심기를 권장하여 백성들이 풍요롭고 부유할 수 있게 하라.(<세종실록> 30, 세종 7127일)

 

맹산 현감 박간에게 한 말이다. 백성이 생업인 농업을 즐겨야 편안하고 풍요로우며 부유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니 수령은 적극적으로 갈고 심기’, 즉 농업을 권장하라.

그러나 농업을 권장한다고 농사가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농사법을 도입하여 농사법을 개량할 필요가 있다. <농사직설>은 그런 목적에서 쓰인 책이다. 세종은 <농사직설>의 보급을 통해 농사법의 개량을 권장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평안도 경력 박효에게 평안도에서는 논농사의 이점을 알지 못하다가, 지난해부터 농사의 지도서적을 나누어 주어서 비로소 논농사의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가서 부지런히 농사를 권장하여 백성이 살아가는 데에 후하게 하라.”(<세종실록> 55, 세종 1417일)고 지시한 데에서 세종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세종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 같다. 세종19(1437), 세종은 함길도와 평안도의 감사를 불러, “지난번에 <농사직설>을 발간하여 각도에 나누어주었으니, 성의껏 친절하게 가르치고 일러주어 농민 중에 고루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라.”(<세종실록> 76, 세종 19215일)고 지시한 것에서, 새로운 농사법의 도입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함길도와 평안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세종은 각 도의 감사에게도 수령들의 할 일 중에서 백성에게 농업을 장려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세종실록 78, 세종 19723일)라고 강조하며 <농사직설>에서 소개한 농사법의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지시했다.

그렇지만 세종은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하지는 말라고 했다.

 

농상(農桑)을 권장하는 이유는 백성들이 잘살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압적이면 백성들이 흔쾌히 따르지 않을 것이니, 마땅히 서서히 권장하라.(세종실록 84, 세종 2114일)

 

장연현감 황척에게 한 말이다. 백성을 잘살게 하자는 일인데, 백성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세종은 정책의 목적과 성과를 혼동하지 않는 드문 임금이었다.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과에 급급하면 오히려 목적을 해치게 된다.

모든 백성이 고루 잘살아야 민본국가가 실현된다. 그래서 세종은 농업 장려, 새로운 농사법 도입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강압적인 시도는 경계했다. 세종은 과정에서부터 민본을 실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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