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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고소금지법을 개정하다(1431711)

 

부민고소금지법을 개정했다. 부민고소금지법이란 아전이나 백성이 지방 수령이나 감사를 고발하지 못하게 한 법이다. 세종2(1420) 913, 예조판서 허조가 주장하고, 당시 상왕인 태종이 승낙하여 제정되었다.

허조는 법 제정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천하나 국가에는 인륜이 있어야 합니다. 임금과 신하의 상하 구분이 반드시 있어야 하니, 조금이라도 그것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일을 엿보다가 조그마한 틈이라도 알게 되면, 그럴듯하게 만들어 하소연하며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조가 만연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세종실록> 9, 세종 2913일)

 

상하 신분질서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법이라고 했다. 세종은 정부의 여러 관청에 보내 의논하게 했다. 영의정 유정현, 좌의정 박은, 우의정 이원 등 의정부의 3정승은 반대했다. “그렇게 하면 수령이 거리낌 없이 행동하게 되어 백성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태종은 허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세종은 태종의 뜻에 따랐다.

그런데 세종은 부민고소금지법이 과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종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완조치를 지시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지난번에 조정에서 의논하여 이 법(부민고소금지법)을 만든 이유는 지방 관리를 소중히 여기고 풍속을 후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토가 넓고 주와 군이 많으니, 어찌 관리 중에 욕심 많고 잔혹하게 행동하여 백성을 파리하게 하고 나라를 병들게 하는 자가 없겠는가.......조관을 파견하여 지방 수령들의 탐욕과 가혹한 형벌의 사용 등을 적발하고,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조관에게 진술하는 것을 허가하고자 한다.......백성들이 적발하여 고소할 수는 없으나 원통하고 억울한 처지를 면할 수 있게 하여 고을마다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영구히 끊어져서 생생하는 즐거움을 이루도록 할 것이다.

(<세종실록> 21, 세종 573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을 내세웠다. 세종은 신분질서 유지라는 명분을 지키면서 백성의 원통함을 덜어주려 했다. 그 방법으로 조관을 파견했다. 조관은 지방 수령의 비리를 적발하는 역할을 했다. 아울러 백성들이 조관에게 억울한 일을 직접 고소할 수 있게 했다.

조관의 파견은 임시 조치에 불과했다. 백성이 일체 고소를 할 수 없게 하면서 조관에게는 고소할 수 있게 한 것은 모순이기도 했다. 그래서 세종13(1431), 세종은 재차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해 거론했다.

 

억울하고 원통한 정을 펴 주지 않는 것이 어찌 정치하는 도리가 되겠는가. 수령이 고을 사람의 논밭에 대해 잘못 판결한 경우, 고을 사람이 소장을 내서 잘못을 고쳐달라고 한 것을 두고 어찌 고소라고 하겠는가. 부득이한 일이라 할 것이다.

(<세종실록> 51, 세종 13119일)

 

정치의 도리를 내세웠다. 정치의 도리는 백성들이 당한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민본의 실현이다. 그런 입장에서, 세종은 백성들이 당한 억울한 일을 고쳐달라는 고소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부민고소금지법 제정에 앞장섰던 허조가 또다시 반대했다. “임금께서 젊은 관리들의 잘못된 얘기를 믿으시고 일반 백성이 수령을 고소할 수 있게 하는 법을 법전에 싣기를 명령하셨는데.......언젠가 반드시 후회하실 것입니다.”(<세종실록> 52, 세종 13614일) 이에 세종이 직접 허조를 설득하였다.

 

내가 일찍이 생각건대, 경의 말은 옳다. 그러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고쳐달라고 하지 못한다면, 가령 수령이 백성의 노비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고치지 않는 것이 옳겠는가.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데 임금이 없으면 어지러워지므로 반드시 임금을 세워서 다스리게 한 것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다스리는 체통을 잃는 것 아니겠는가.(<세종실록> 52, 세종 13620일)

 

세종은 두 가지를 구분했다. 수령을 고소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허조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토지나 노비 문제 등에서 잘못된 판결로 인해 개인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고소하여 판결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구분에 허조도 동의했다. 이에 따라 맹사성, 허조, 정초 등이 참여한 상정소에서 법안 조문을 마련하여 법전에 실었다. “자기의 억울한 일을 호소한 소장을 수리하여 다시 판결한다.”

신분질서의 유지라는 명분에 민본 정신을 절충한 법 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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