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아침에 도를 듣는다.”라고 했다. 스승에게서 듣는다는 말이다. 多聞(다문) : 많이 듣고 擇其善者而從之(택기선자이종지) : 그 가운데 선한 것을 가려서 따른다. 多見而識之(다견이식지) : 많이 봐서 알아차리는 것이 知之次也(지지차야) : 앎의 다음이다. 제7편 에 나오는 구절이다. 문(聞)과 견(見)이 비교됐다. 흔히 ‘견문(見聞)’이라고 한다. 견문은 ‘보고 들어서 아는 지식’을 의미한다. 보아서 아는 지식과 들어서 아는 지식을 차등하지 않았다. 공자의 생각은 달랐다. 들어서 아는 지식이 으뜸이고, 보아서 아는 지식은 들어서 아는 지식 다음이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들어서 아는 지식은 스승에게서 배운 지식이다. 보아서 아는 지식은 경험하여 알게 된 지식이다. 다문(多聞)을 다견(多見)보다 앞..
朝聞道(조문도) : 아침에 도를 들으면, 夕死可矣(석사가의) :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제4편 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문도(聞道)는 도를 배운다는 말이다. 선생이 도를 말하면, 학생은 선생의 말씀을 듣고 도를 배운다. 도를 들으면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말은 진리를 향한 갈망을 나타낸다. 도는 흔히 쓰는 말이지만, 도의 의미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길을 걷다 별안간(?) 듣게 되는 말, “도를 좋아하세요?”에서 사용된 도의 의미는, “00 선사는 30년간 도를 닦아 경지를 이루었다.”라는 말에서 사용된 도의 의미와 같을 수 없다. 공자가 사용한 도는 어떤 의미일까? 曾子曰(증자왈) : 증자가 말했다. 夫子之道(부자지도) : 선생님의 도는 忠恕而已矣(충서이이의) : 충과 서일 뿐이다. 제4편 에 나..

초가집 한 채와 소나무 두 그루, 잣나무 두 그루를 그렸다. 그림 오른쪽 윗부분에는 세로로 ‘세한도(歲寒圖)’라고 큰 글씨로 썼고, 가로로 ‘우선시상(藕船是賞)’과 ‘완당(阮堂)’이라고 작은 글씨로 썼다. ‘완당’ 밑에 ‘정희(正喜)’와 ‘완당(阮堂)’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그림 오른쪽 아랫부분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 사람은 완당 김정희(1786년~1856년)이다. 김정희는 호를 여럿 사용했는데, ‘완당’과 ‘추사’가 가장 유명하다. 그림 제목을 라고 했다. ‘세한’은 몹시 추운 때를 의미한다. 초가집 한 채와 소나무, 잣나무 각 두 그루는 몹시 추운 날의 황량한 모습을 보여준다. ‘세한’은 김정희가 자기 처지를 빗댄 말이기도 하다. 를 그릴 때, 김정희..

의상 대사의 본찰, 부석사 경상북도 영주시의 부석사는 역사적 기록이 단단한 절이다. 에 부석사와 창건자인 의상 대사의 이야기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의상이 왕명을 받아 부석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신라 문무왕 16년, 676년에 있었던 일이다. 신라가 당나라를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성한 해였다. 신라와 당나라는 연합하여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후 당나라는 신라마저 멸망시키고자 했다. 신라는 당나라의 공격을 막아냈고, 마침내 676년에 완전히 몰아냈다. 이 과정에 의상이 공적을 세웠다. 의상은 당나라에 유학하던 중, 당나라 고종이 신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귀국하여 조정에 알렸다(670년). 신라가 당나라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게 했다.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친..
배움은 스승이 있어야 가능하다. 스스로 학습이 중요하다며 자기주도학습을 강조하는 시대지만, 스승에게 배우는 ‘학’이 있어야 스스로 익히는 ‘습’이 가능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공자는 홀로 공부했기에 스승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스승은 어떤 사람일까?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可以爲師矣(가이위사의) : 스승이 될 수 있다. 제2편 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등장한다. 누구나 옛것을 배우는 데서 시작한다. 옛것을 배워 옛것을 아는 데 그친다면, 배우는 보람이 없다. 옛것을 배우는 이유는 새것을 알기 위해서다. 새것을 알고 새것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만다. 새것만 배우면 어떨까? 가능하지 않다. 옛것을 바탕으로 하지 ..
≪논어≫는 공자의 말씀을 제자들이 모아놓은 책이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중국 각지로 흩어졌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제자들에게 공자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가 필요했으리라. 그런 필요에서 직접 들었거나 전해 들은 공자의 말씀을 정리하여 교재가 만들어졌다. 개개 제자 집단에서 사용한 교재를 모으는 작업도 진행되었을 텐데, 그 결실이 ≪논어≫이다. ≪논어≫는 2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20개 혹은 그 이상의 제자 집단에서 사용한 교재를 모았기 때문이리라. 제자 집단에서 사용한 교재에 제목이 붙어 있었을 리 없다. 지금 우리가 보는 ≪논어≫에는 편마다 제목이 붙어 있는데, 편의상 각 편의 첫 두 글자를 따서 제목으로 붙였다. 예를 들어 ≪논어≫ 제1편의 제목은 이다. 제1편의 첫 두 글자가 ‘학이..
누군가가 자공에게 말했다. “동문에 어떤 사람이 서 있는데, 이마는 요임금처럼 생기고, 목은 순과 우 임금 때의 재상 고요와 비슷하고, 어깨는 자산을 닮았소. 그렇지만 허리 아래는 우임금보다 세 치나 짧고, 초췌한 모습은 상갓집 개와 같았소.”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공자세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이다. 공자와 제자들이 함께 정나라에 갔을 때 길이 어긋난다. 공자는 제자들과 떨어져 성의 동문에 홀로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이 홀로 서 있는 공자의 모습을 ‘상갓집 개’ 같다고 표현했다. 상갓집에서 개는 찬밥 신세이다. 돌보는 사람이 없으니, 마르고 볼품없게 된다. 공자는 그런 볼품없는 개와 비슷한 처지였다.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뜻을 펼치려 했지만, 그 뜻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
통일신라의 사람들 ① 설총 설총은 제31대 임금 신문왕 때의 문신이다. 아버지는 원효 대사이고, 어머니는 요석 공주이다. 어릴 때부터 지혜롭고 영민하여 경서와 역사책에 통달했다고 한다. 설총은 구결(口訣)을 창안했다. 한자를 이용하여 우리말을 표시하는 방법에는 향찰과 구결이 있었다. 향찰은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우리말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주로 향가를 짓는 데 이용되었다. 반면 구결은 한문을 읽을 때 뜻을 이해하기 쉽게 달아 쓰던 토를 말한다. 한문 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그런 방법은 후대에도 한문 문장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이용되었으니, 오랫동안 설총의 덕을 본 셈이다. 원효 대사가 세상을 떠나자, 설총은 유해를 잘게 부수어 원효의 얼굴 소상을 빚고 분황사에 모셨다고 한다. 설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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