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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고

은선재 2021. 3. 6. 22:16

<세한도> 그림 부분

  초가집 한 채와 소나무 두 그루, 잣나무 두 그루를 그렸다. 그림 오른쪽 윗부분에는 세로로 세한도(歲寒圖)’라고 큰 글씨로 썼고, 가로로 우선시상(藕船是賞)’완당(阮堂)’이라고 작은 글씨로 썼다. ‘완당밑에 정희(正喜)’완당(阮堂)’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그림 오른쪽 아랫부분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 사람은 완당 김정희(1786~1856)이다. 김정희는 호를 여럿 사용했는데, ‘완당추사가 가장 유명하다. 그림 제목을 <세한도>라고 했다. ‘세한은 몹시 추운 때를 의미한다. 초가집 한 채와 소나무, 잣나무 각 두 그루는 몹시 추운 날의 황량한 모습을 보여준다.

  ‘세한은 김정희가 자기 처지를 빗댄 말이기도 하다. <세한도>를 그릴 때, 김정희는 윤상도 사건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었다. 윤상도는 조선 23대 임금 순조 때 벼슬한 인물이다. 호조판서 박종훈 등을 부패 혐의로 탄핵하다 무고죄로 처형되었다. 김정희는 윤상도가 올린 상소문의 초안을 잡았다는 이유로 유배되었다. 1840년의 일이었다. 세한의 시절이었다.

  그림을 계속 보자. 오른쪽 윗부분의 우선시상우선, 감상하시게.”라는 말이다. ‘우선은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의 호이다. 이상적은 조선 사절단의 통역관으로 중국 청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중국에 갈 때마다 새로운 책을 사서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다. 김정희는 이상적의 정성에 감동하여 <세한도>를 그려 주었다.

  그런 사연을 그림 왼쪽에 쓴 발문에서 밝혔다

 

<세한도> 발문 부분

  “지난해 <만학집><대운산방문고>를 보내주고, 올해에는 또 <황제경세문편>을 보내주었다. 이 책들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천 리 밖 머나먼 곳에서 구했을 터이니, 몇 해에 거쳐 얻은 책이지 결코 일시에 얻은 책이 아니다. 세상 풍조는 온통 권력과 이익만 좇을 뿐이다. 이 책들을 구하려면 마음과 힘을 썼을 터인데, 권세가 있거나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고 깡마른 사람에게 보내주었다.

  사마천은 권세나 이익을 보고 사귄 사람은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교제가 멀어지는 법이다.”라고 했다. 그대 역시 세상의 도도한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일 터인데, 어찌 권세 있거나 이익을 주는 사람을 좇지 않는단 말인가. 세상의 풍조에서 벗어나 권세나 이익을 잣대로 나를 대하지 않으니, 사마천의 말은 틀렸단 말인가?

  공자께서 세한(歲寒) 이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철 시들지 않는 나무들이다. 세한 이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세한 이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지만, 성인께서는 특별히 세한 이후의 소나무와 잣나무를 칭찬하셨다.

  그대는 나에게 귀양 이전이라고 더하지 않았고 귀양 이후라고 덜하지 않았다. 귀양 이전에는 그대를 칭찬하지 못했으나, 귀양 이후에는 성인이 그대를 칭찬할 만하지 않은가. 성인께서 특별히 칭찬하신 이유는 세한 이후에도 시들지 않는 절조 때문이 아니다. 세한 시절에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 옛 전한의 순박한 시대에도 사람들은 권세와 이익에 따라 급암과 정당시같이 훌륭한 사람들에게도 붙었다 뒤돌아섰다. 하규 땅의 적공은 대문에 염량세태의 인심을 풍자한 글을 써 붙였으니 박절한 인심의 극치라 하겠다. 슬프다! 완당 노인 쓰다.”

 

  이상적은 한결같았다고 했다. 귀양 이전에는 칭찬하지 못했으나, 귀양 이후에는 공자라도 칭찬하리라고 했다. 김정희는 세한 같은 어려움에 닥치니 세상인심을 새삼 알게 되었다며, 박절한 인심이 슬프다고 했다.

 

<세한도> 전도

  그림 오른쪽 아랫부분에 도장으로 찍은 장무상망은 김정희의 소망이다. ‘장무상망오래도록 서로 잊지 마세.’라는 의미이다. 세상인심이 박절해도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당부였다. <세한도>는 김정희가 자신의 처지를 세한에 비유하며, 이상적에게 감사와 함께 서로 잊지 말자!”라는 당부를 하는 그림이다.

 

  <세한도>는 문인화의 최고 작품이라고 한다. 문인화란 그림을 직업적으로 그리지 않는 문인이 그린 그림이다. 김정희는 화가가 아니라 학자이자 서예가이다. 그림은 소박하나, 글의 내용과 글씨체는 압도적인 힘이 있다. 그림과 글을 결합하여, 김정희는 자기 마음을 핍진하게 표현했다.

(전시: 20212,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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