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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1부(1900년-1950년)를 보고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19. 10. 17~2020. 2. 9.
1전시실에서 <전우 초상>을, 4전시실에서 <해당화>를 보았다.
1전시실의 주제는 ‘의로운 이들의 기록’이라고 했다. 유학자 중 의병활동이나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다룬다. 최익현과 이회영이 대표적이다. 면암 최익현(1833년~1907년)은 의병을 일으켰다 붙잡혀 쓰시마 섬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우당 이회영(1867년~1932년)은 만주와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한 뒤,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간재 전우(1841년~1922년)는 최익현이나 이회영과 다른 삶을 살았다. 전우는 율곡 이이와 우암 송시열의 학통을 잇는 유학자로 수많은 유학자들의 신망을 받았다. 을사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을 죽여야 한다는 상소를 하기도 했지만, 강제적 한일합병 이후에는 제자들을 이끌고 서해안의 작은 섬으로 들어갔다. “도학(道學)을 일으켜 나라를 살리겠다.”며 제자를 기르는 일에 전념했다.
<전우 초상>을 그린 작가는 채용신(1848년~1941년)이다. 채용신은 인물 초상화를 잘 그려, 고종, 최치원, 최익현, 황현 등 다수 인물의 초상화를 남겼다. <전우 초상>은 전우가 80살이었을 때의 모습이라고 하니,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의 모습이다. 초상화에는 전우가 지은 <자경(自警)>이란 시가 쓰여 있다. “큰 덕을 쌓으려면 마음을 잘 다스려 본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 전우가 평생을 두고 성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본성을 되찾아 큰 덕을 쌓는다.’ 전우는 제자들과 함께 수양을 하며 국권 회복을 기다렸다.
4전시실의 주제는 ‘조선의 마음’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조선 고유의 미학(美學)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고자 했던 일련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고유의 미학이 무엇인지 찾기는 쉽지 않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하며 ‘조선 고유의 미학’이라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해당화>를 그린 작가는 이인성이다. 이인성(1912년~1950년)은 생전에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해당화>는 이인성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해당화>는 1944년에 그린 작품이라 하니 해방되기 약 1년 전의 그림이다. 그림을 보자. 저 멀리 바다에는 돛단배가 한가로이 떠 있다. 종류를 알기 어려운 동물(개? 소? 말?) 한 마리가 무언가를 여유롭게 먹고 있다. 해당화는 활짝 피었고, 그 앞에서 두 어린이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평화로운 한 때를 그린 것 같다.
그런데 여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무엇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인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만해 한용운(1879년~1944년)은 시 <해당화>에서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해당화는 활짝 피웠는데, ‘당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니 여인의 기다림은 더욱 간절하다. 그 간절함이 눈빛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러고 보면 간재 전우나 <해당화> 속 여인은 무언가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같은 것을 기다렸지만 절박함은 달랐다. <전우 초상> 속 전우는 전우 개인이다. 자기 자신을 올곧게 세우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을 뿐, 기다림은 간절하지 않다. 반면, <해당화> 속 여인은 민중이다. 핍박을 받아 쭈그리고 있으면서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두 계층의 서로 다른 모습이 이렇게 그려져 있다.
2전시실 벽. 이육사(1904년~1944년)의 시 <광야>가 있었다. 이육사는 양반 가문 출신으로 근대적 의식을 갖추고 민중을 사랑한 시인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히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까마득한 과거에서 시작하여 천고 뒤의 미래로 나아갔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는 미래는 희망적이다. <해당화> 속 여인이 기다리는 미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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