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별로 시를 짓지 않았다. 시 짓기로 학문과 문학의 실력을 겨루던 때였다. 당시 문인들은 중국에서 틀을 갖춘 한시(漢詩)를 배워 시를 지으며 뽐냈다. 시 짓기는 외교에서도 한몫했다. 사신과 사신을 맞이하는 문신이 한시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문화 수준을 견주었다. 이런 시대에 시를 별로 짓지 않았다는 것에서 박지원은 출세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지원은 주로 산문을 썼고 소설을 썼다. 당시 산문은 잡문(雜文)이라 했고 소설은 패관(稗官)이라 했다. 산문이든 소설이든 잡스러운 글로 취급되고, 글로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박지원은 왜, 시를 짓지 않고 소설을 썼을까? 시는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한 문학 작품이다. 어떤 문학 작품이든 작가의 생각과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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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이 만든 신라의 석탑 감은사는 경주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금의 주소로는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용당리 55-1번지에 감은사가 있었다. 지금은 경주시로 편입된 지역이지만, 감은사가 지어질 당시에는 그저 ‘동해 바닷가’였을 뿐이다. 지금도 경주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가량 가야 하니 당시에는 하루 종일 걸어야 갈 수 있는 지역에 감은사가 있었다. 그토록 먼 동해 바닷가에 감은사를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 가에 감은사를 지었다”라고, 고려시대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밝혔다. 감은사에서 전해지던 기록에 따르면,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짓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뒤 아들 신문왕이 계승하여 재위 2년(682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호주)는 어떤 나라일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전시 중인 에서 호주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호주의 속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로를 재탐색’하며 호주의 속살을 들여다보자. 호주의 겉살과 속살 호주는 영국인들이 이주하여 만든 나라이다. 1770년에 영국이 호주를 자기 영토라고 선포한 이후, 주로 범죄인과 선원들이 영국에서 호주로 이주했다. 1901년에 영국의 지배를 받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설립되었고, 1968년에 영국에서 독립했다. 미술에 나타난 호주는 영국인 이주민만의 나라가 아니다. 호주에는 영국인이 이주하기 훨씬 이전에 원주민이 살았다. 영국인만이 이주한 것도 아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이주했다. 호주는 ..
소중한 작품, 편지 추사 김정희의 는 국보 제180호이다. 김정희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문인화의 진수이다. 문인화는 간결한 필법으로 화가의 마음을 담아내는 그림이다. 의 구도는 매우 간결하다. 화면 중앙에는 둥근 창이 나 있는 집 한 채가 있고, 집 주변에는 잎이 성근 늙은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르른 잎을 간직한 곰솔 세 그루가 있을 뿐이다. 몹시 추운 때를 의미하는 ‘세한(歲寒)’의 황량한 모습을 보여주는 간결한 구도의 그림이다. 를 그릴 당시 김정희는 제주에서 유배 중이었다.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1840년에 유배되었는데, 1844년에 를 그렸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는 김정희가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표현한 그림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옆에 추사체로 쓴 글에서 그림을 그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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