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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에 있는 통도사는 신라 선덕왕 때 승려 자장이 지은 절이다. <삼국유사>에 통도사를 지은 이유를 설명해놓았다. “이때 나라 안에 계를 받고 불법을 받드는 이가 열 집 가운데 여덟아홉 집은 되었다. 머리 깎고 승려가 되기 청하는 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통도사를 세우고 계단(戒壇)을 쌓아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받아들였다.”라고 했다. ‘계단’이란 계를 받으려고 쌓은 단을 말한다.
통도사 대웅전 한쪽 벽면에는 흥선대원군이 쓴 ‘금강계단(金剛戒壇)’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금강’은 최고를 나타내는 말이니, 금강계단이란 계단 중 최고라는 말이다. ‘계’란 불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을 말한다. 흔히 계율이라 하는데, ‘계를 받았다.’라고 하면 불교도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이다.
당대의 실력자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인지라 금색이다. 당대의 실력자가 현판을 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조선이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을 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흥선대원군의 현판은 통도사의 위상을 말해준다.
통도사의 위상이 높은 이유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통도사에는 처음 세웠을 때보다 상당히 많은 건물이 있다. 여러 승려가 통도사에 머물렀고, 머무를 때마다 자신의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 통도사는 오래된 사찰로서의 맛 혹은 멋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통도사를 지은 자장은 선덕왕 때 최고의 승려였다. 선덕왕이 직접 당나라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자장의 귀국을 요청할 정도였다.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보(法寶) 사찰’이다. 자장은 왜 법보 사찰을 경주가 아니라 양산의 산골짜기에 지었을까?
통도사는 자장이 신라를 불국토(부처가 사는 나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지은 절이다. 부처의 사리가 신라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지, 사찰의 위치가 중요하지 않았다. 통도사의 위치를 보면, <삼국유사>의 설명과 달리, 통도사는 백성이 아니라 귀족을 위한 절이다. 신라 시대에 양산 산골짜기는 백성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자장 시대에 귀족들은 앞다퉈 승려가 되고자 했다. 백성이 불교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원효 이후이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원효의 업적을 평가하며, “모든 백성에게 부처의 이름을 알리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했으니, 원효가 큰 역할을 했다.”라고 했다.
일연은 왜 통도사를 백성과 연관 지었을까. ‘불이문(不二門)’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불이문은 고려 충렬왕 때 지은 건물이다.
‘불이문'이란 진여문과 생멸문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진여문은 진리의 문을 말하고, 생멸문은 일상에서 겪는 번민과 갈등의 문을 말한다. 이 두 문이 둘이 아니라는 말은 일상의 번민과 갈등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에서 불이문의 의미를 그렇게 밝혀놓았다.
불이문은 민중의 지혜를 강조한 사상이다. 진리 문제만이 아니라 현실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의 이상 세계와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는 둘이 아니다. 이상 세계는 현실 세계와 멀리 떨어진 어떤 곳에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이다.
현실 세계에서 이상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면 민중의 지혜가 중요하다. 불이문은 한국 고유의 민중불교를 상징한다. 고려 중기에 지눌이 등장한 이후, 민중불교가 불교의 주도적 흐름이 되었다. 일연은 지눌의 영향을 받은 승려였다. 당연히 일연은 법보 사찰 통도사를 백성과 연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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