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연재를 시작하며)
<세종장헌대왕실록>(약칭 <세종실록>)은 세종의 즉위 때(1418년)부터 재위 32년(145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를 기록한 책이다. 재위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세종실록>의 내용 또한 163권 154책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세종은 신생왕조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문화를 융성하게 한 임금이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외에도 수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여기에서는 세종의 말과 생각을 중심으로 세종이 추구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세종실록> 읽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
세종, 즉위하다(1418년 8월 10일)
세종이 즉위했다(1418년 8월 10일, 음력, 이하 같음), 세종은 변고가 일어나 자신이 즉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무인년(戊寅年), 경진년(庚辰年), 무술년(戊戌年) 때의 일은 모두 변고 때문에 가능했다.
(<세종실록> 107권, 세종 27년 1월 18일)
무인년(1398년) 때의 일이란 태조가 정종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준 일을 말한다. 그리고 경진년(1400년) 때의 일은 정종이 태종에게, 무술년(1418년) 때의 일은 태종이 세종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준 일이다.
무인년과 경진년에는 분명한 변고가 있었다. 무인년에는 이방원이 난을 일으켰고(제1차 왕자의 난), 경진년에는 이방원이 이방간은 난을 제압했다(제2차 왕자의 난). 이런 변고로 인해 임금이 바뀌었다.
그러면 무술년에는 어떤 변고가 있었을까? 그해 6월, 세자가 양녕에서 충녕(세종)으로 바뀌었다. 즉, 임금이 될 사람이 바뀐 것이었다. 이를 두고 세종은 변고라고 했다. 임금이 될 사람이 임금이 되지 못했고, 임금이 될 수 없었던 사람이 임금이 되었으니 변고라면 변고다. 그래서일까.
양녕이 마땅히 임금이 되어야 했고, 내가 임금이 될 차례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양녕을 대신하여 임금이 되어 최상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어찌 마음 속 깊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세종실록> 52권, 세종 13년 5월 4일)
그래서 세종은 분발했다. 세종은 나라 사람들(國人)의 기대를 알고 있었다. 훗날 세종은 “내가 즉위했을 때 나라 사람들이 나에게 현명한 임금이 될 것을 기대했는지, 내가 감히 알지 못한다.”(<세종실록> 121권, 세종 30년 7월 18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기대를 계속 의식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은 현명한 군주, 즉 성군이 되고자 했다.
세종이 즉위했을 때, 조선은 개국한 지 24년밖에 안 된 신생왕조였다. 고려를 멸망시켰지만, 왕이 달라진 것 이외에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나 태종은 고려의 법과 제도를 활용하여 통치했다. 고려는 없어졌지만 고려의 체제는 유지되었다. 새로운 국가에 걸맞은 새로운 체제가 필요했다.
세종은 즉위 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조께서 나라를 세우시고 부왕(태종)께서 그 큰 사업을 이어받으셨다.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 신중히 하셨고,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셨으며......효도하고 우애하는 마음이 천지신명을 감동시켰다. 나라 안팎이 평안하고 나라의 창고가 넉넉하며......문치(文治)가 융성했다......일체의 제도는 모두 태조와 우리 부왕께서 이루어 놓으셨으니, 그것에 따를 뿐 아무런 변경이 없을 것이다.( <세종실록> 1권, 세종 즉위년 8월 11일)
태조와 태종이 하던 대로 하겠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한껏 높이고자 한 말이지만, 그 말 그대로라면 세자를 양녕에서 충녕으로 바꿀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태조와 태종이 했다는 일은 세종이 하고자 하는 일이었다.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한다.”라는 말에 주목하자. 경천애민(敬天愛民)! 유교 정치사상의 근본이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다. 조선은 유교를 지배적 사상으로 내걸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로운 사상을 실현하려면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고려의 낡은 체제를 청산하고 조선의 새로운 체제를 세워야 한다. 양녕이 쫓겨나고 세종이 임금으로 추대된 이유였다.
세종은 조선의 왕으로서, 성군이 되고자 노력하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세종 재위 32년을 거치며, 조선은 모범적인 왕조 국가로 발전했다.
'연재 > (연재2) 세종실록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종실록 읽기 06)세종6년(1424년)에 있었던 일 (0) | 2020.03.02 |
---|---|
(세종실록 읽기 05)세종5년(1423년)에 있었던 일 (0) | 2020.02.28 |
(세종실록 읽기 04) 세종4년(1422년)에 있었던 일 (0) | 2020.02.24 |
(세종실록 읽기 03)세종2년(1420년)에 있었던 일 (0) | 2020.02.20 |
(세종실록 읽기 02) 세종 1년(1419년)에 있었던 일 (0) | 2020.02.17 |
- Total
- Today
- Yesterday
- 돈화문 #창덕궁 #이궁 #누각의종 #태종
- 남한산성 #수어장대 #무망루 #최명길 #김상헌 #김만기 #병자호란 #인조 #청량산 # 주장성 #일장산성 #인조
- 경주남산 #칠불암마애불상군 #삼릉계석조여래좌상 #불곡마애여래좌상 #국보 #귀족불교 #원효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